반달색인
2018
작가노트
조현선
반달 색인은 두꺼운 사전류의 책 옆면에 색인을 위하여 반달 모양으로 도려낸 홈을 가리킨다. 요즘은 종이사전 자체를 잘 사용하지 않아 한 번에 그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겠으나, 스마트폰 사전앱이 종이사전을 대체하기 시작한 시점 이전에는 반달 색인에 엄지손가락을 살짝 넣어 낱말이나 지시어를 찾곤 했다. 우리말로는 색인 앞에 반달을 붙였지만, 영어에는 엄지손가락을 뜻하는 thumb을 붙여 사용하니, 개인적으로 우리말 반달 색인은 시적인 측면을 강조한 이름같고, 영어인 thumb index는 실용성을 강조한 이름같이 느껴졌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굳이 비교할 필요 없이 둘 다 아날로그적이고 정감있는 표현이 된 듯하다.
전시 제목이 시사하듯, <반달 색인(Thumb Index_Half Moon Index)2018>*은 지난 몇 년간의 작업들을 하나의 사전으로 보고 그 안으로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한 작업의 결과물이다.이 ‘색인 펼쳐보기’ 과정은 <위장된 오렌지(Camouflaged Orange) 2015> 작업들을 모체로 삼아, 그 작업들에서 파생된<친밀한 거리(Intimate Distance) 2016~2017> 작업들, 그리고 이번 전시와 같은 제목으로 작년에 먼저 그린<반달 색인 드로잉들(Thumb Index Drawings) 2017> 작업들을 거쳐, 올 해 갤러리 퍼플 입주작가 개인전에서 전시하게 되는 <반달 색인 2018> 페인팅 작업들로 이어진다. 경험한 대상들의 지시체로서의 상징적 역할을 탈락시키고 인덱스들을 위계없이 한 화면에 모아 놓은 것이2015년까지의 작업이었다면, 이후의 작업들은 대상을 내 작업 자체로 정하고, 이미 존재하는 그림 속 메모**들을 따로 발췌하여 드로잉과 페인팅으로 재구성하고 다시 그리기한 과정의 모음이다. 이번 전시는 원본 작업으로 돌아가기와 떨어져 나오기를 반복한 작업 과정의 결과물들을 통해 추상 그리고 드로잉과 페인팅을 사유하고자 한 시도로, 이전에 그려진 작업들을 소환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동반한다.
오랫동안 나는 추상과 그리기에 대해 생각해왔고, 작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선택지를 거쳐 완성된 결과물에 도달하는 긴 여정에 대해 흥미롭게 생각해왔다. 사전적 의미의 추상은 ‘개별적인 사물이나 구체적인 개념으로부터 공통적인 요소를 뽑아 일반적인 개념으로 파악함, 또는 그렇게 하는 정신 작용***’이라고 정의된다. 사전처럼 한 문장 안에 명료하게 정의내리는 것은 어떤 작가에게도 불가능하다.정의내리기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정의는 완벽할 수 없으며, 잠정적인 것일 뿐이다. 추상과 회화라는 거대한 몸체에 불안하게 정차한 상태로 그것을 은유하고, 묘사하고, 구체화시키고, 예를 들고, 결론을 내리고, 결과를 제시하고, 취소하고, 돌아가고, 보완하기를 반복하며, 만들기(creating)와 수정하기(editing) 사이를 끝없이 오가며 미완의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다.
* 제목 반달 색인은 영어로 Thumb Index가 맞지만 우리말 그대로 Half Moon Index 로 직역하여 함께 표기하였다.
** 메모(들). memo(s).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메모들 처럼 각각의 그림들과 그림 속 요소들은 다른 작업에 사용되기 위한 레퍼런스로써, 혹은 그 자체로써도 의미가 있는 메모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회화작가에게 메모는 드로잉같다는 생각이 들고, 내 작업에서는 드로잉과 페인팅의 경계가 흐리거나 오히려 반대적이니 드로잉과 회화 모두 메모같기도 하다.
***반달 색인이 있는 동아 새 국어사전 제5판 ㅊ p.2322 참고
2018
작가노트
조현선
반달 색인은 두꺼운 사전류의 책 옆면에 색인을 위하여 반달 모양으로 도려낸 홈을 가리킨다. 요즘은 종이사전 자체를 잘 사용하지 않아 한 번에 그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겠으나, 스마트폰 사전앱이 종이사전을 대체하기 시작한 시점 이전에는 반달 색인에 엄지손가락을 살짝 넣어 낱말이나 지시어를 찾곤 했다. 우리말로는 색인 앞에 반달을 붙였지만, 영어에는 엄지손가락을 뜻하는 thumb을 붙여 사용하니, 개인적으로 우리말 반달 색인은 시적인 측면을 강조한 이름같고, 영어인 thumb index는 실용성을 강조한 이름같이 느껴졌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굳이 비교할 필요 없이 둘 다 아날로그적이고 정감있는 표현이 된 듯하다.
전시 제목이 시사하듯, <반달 색인(Thumb Index_Half Moon Index)2018>*은 지난 몇 년간의 작업들을 하나의 사전으로 보고 그 안으로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한 작업의 결과물이다.이 ‘색인 펼쳐보기’ 과정은 <위장된 오렌지(Camouflaged Orange) 2015> 작업들을 모체로 삼아, 그 작업들에서 파생된<친밀한 거리(Intimate Distance) 2016~2017> 작업들, 그리고 이번 전시와 같은 제목으로 작년에 먼저 그린<반달 색인 드로잉들(Thumb Index Drawings) 2017> 작업들을 거쳐, 올 해 갤러리 퍼플 입주작가 개인전에서 전시하게 되는 <반달 색인 2018> 페인팅 작업들로 이어진다. 경험한 대상들의 지시체로서의 상징적 역할을 탈락시키고 인덱스들을 위계없이 한 화면에 모아 놓은 것이2015년까지의 작업이었다면, 이후의 작업들은 대상을 내 작업 자체로 정하고, 이미 존재하는 그림 속 메모**들을 따로 발췌하여 드로잉과 페인팅으로 재구성하고 다시 그리기한 과정의 모음이다. 이번 전시는 원본 작업으로 돌아가기와 떨어져 나오기를 반복한 작업 과정의 결과물들을 통해 추상 그리고 드로잉과 페인팅을 사유하고자 한 시도로, 이전에 그려진 작업들을 소환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동반한다.
오랫동안 나는 추상과 그리기에 대해 생각해왔고, 작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선택지를 거쳐 완성된 결과물에 도달하는 긴 여정에 대해 흥미롭게 생각해왔다. 사전적 의미의 추상은 ‘개별적인 사물이나 구체적인 개념으로부터 공통적인 요소를 뽑아 일반적인 개념으로 파악함, 또는 그렇게 하는 정신 작용***’이라고 정의된다. 사전처럼 한 문장 안에 명료하게 정의내리는 것은 어떤 작가에게도 불가능하다.정의내리기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정의는 완벽할 수 없으며, 잠정적인 것일 뿐이다. 추상과 회화라는 거대한 몸체에 불안하게 정차한 상태로 그것을 은유하고, 묘사하고, 구체화시키고, 예를 들고, 결론을 내리고, 결과를 제시하고, 취소하고, 돌아가고, 보완하기를 반복하며, 만들기(creating)와 수정하기(editing) 사이를 끝없이 오가며 미완의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다.
* 제목 반달 색인은 영어로 Thumb Index가 맞지만 우리말 그대로 Half Moon Index 로 직역하여 함께 표기하였다.
** 메모(들). memo(s).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메모들 처럼 각각의 그림들과 그림 속 요소들은 다른 작업에 사용되기 위한 레퍼런스로써, 혹은 그 자체로써도 의미가 있는 메모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회화작가에게 메모는 드로잉같다는 생각이 들고, 내 작업에서는 드로잉과 페인팅의 경계가 흐리거나 오히려 반대적이니 드로잉과 회화 모두 메모같기도 하다.
***반달 색인이 있는 동아 새 국어사전 제5판 ㅊ p.2322 참고